1658년(효종 9) 건립. 1984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신의 높이 177㎝, 너비 100㎝, 두께 28㎝. 현재 비각(碑閣)에 보호되어 있다.
이시발은 1589년(선조 22)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된 뒤, 임진왜란과 이몽학(李夢鶴)의 난(1596) 때에 커다란 공을 세웠고 이괄(李适)의 난(1624)을 평정하기도 했으며, 또 북변의 여진족을 무마하여 지방민의 생활안정을 돕는 등 많은 공로를 세웠다. 말년에 남한산성의 개축공사를 감독하던 중 사망하였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비문에는 이러한 그의 생애와 공로가 기술되어 있는데, 예조참판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호조참판 송준길(宋浚吉)이 행서로 썼으며, 두전(頭篆)은 좌승지 이정영(李正英)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