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전기 적개공신 3등에 책록된 공신.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67년(세조 13) 5월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토벌군으로 출전하여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 3등에 책록되고 계성군(鷄城君)에 봉하여졌으며, 충의교위(忠毅校尉) 행호분위중부사직(行虎賁衛中部司直)으로 겸사복(兼司僕)이 되었다.
서얼 출신이기 때문에 자급(資級)이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으나 한 번도 현직(顯職)에는 등용되지 못하였고, 평생 겸사복으로 있으면서 포도장으로 도성 내외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는 도적 소탕에 공을 세웠다. 그 중에서도 관악산 일대에 둔취, 항거하였던 고도(古道)·김말응(金末應) 등의 소탕과 충주의 수리산(愁里山), 여주의 강금산(剛金山) 도적들을 소탕하여 큰 공을 세운 것이 유명하다.
평생을 겸사복으로 지냈으나 불평 한마디 없었고, 옛날 자신이 신장사하던 저자를 지날 때는 반드시 말에서 내려 옛 친구들과 땅에 앉아서 이야기하다가 가곤 하였다 한다. 시호는 양평(襄平)이다.
참고문헌
- 『세조실록(世祖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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