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사상(士常), 호는 천유(天遊). 이양열(李揚烈)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시필(李時苾)이며, 아버지는 좌랑 이정린(李庭麟)이다. 남구만(南九萬)의 문인이다.
1677년(숙종 3)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1691년(숙종 17) 통덕(通德)으로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성균관학유·박사가 되었다. 1695년 설서·정언을 거쳐, 이듬해 지평이 되어 만언소(萬言疏)를 올려 붕당의 폐해 등 시정을 극론하였다. 1700년 사서·정언이 되고 이듬해 문학을 거쳐, 1702년 양남암행어사(兩南暗行御史)가 된 뒤 다시 장령·필선이 되었다.
1704년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중국 역대 현군·명신 가운데 모범이 될만한 인물을 그림으로 그린 『양정도해책(養正圖解冊)』을 왕에게 올렸다. 이어 보덕·헌납을 거쳐 1705년 집의·승지에 선임되었는데, 왕이 왕자에게 선위한다는 명을 내리자 앞장서서 그 불가함을 상소하여 그만두게 하였다.
1706년 대사간·충청도관찰사를 거쳐 1708년 황해도관찰사가 되었다. 1709년 중앙으로 들어와 승지가 되었다. 학문이 깊고 문장이 정밀하며 시를 잘 지었다. 천성이 진지하고 충직하여 승정원에 재임하는 중에는 하루 10건의 상소문을 쓰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