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안동 출신. 1919년 3·1운동 당시 안동의 예안에서 태극기를 제작하여 거사에 참여하였다. 다음해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을 모으기 위하여 활동하던 중 영주경찰서에 일시 붙잡혔고, 1922년에는 충청남도 논산군 연산의 송종빈(宋鍾斌)의 집에서 군자금모금운동을 숙의한 뒤 경상북도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그해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고, 다시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1942년에서 1944년경에는 충청남도 대덕군에서 수운교(水雲敎) 간부로 활약하였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