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몽여(夢與), 호는 동계(東溪). 아버지는 통덕랑 이화신(李華臣)이며, 어머니는 평산신씨(平山申氏)로 신임(申銋)의 딸이다.
유가의 경전은 물론 제자백가에 통하였다. 『사기(史記)』를 깊이 연구하여 역사학에도 일가견을 가지고 고대 인물의 선과 악, 정치의 잘잘못을 기탄없이 비판하였다. 특히 당시에 이단으로 지목되던 『장자』·『이소경』·『노자』 및 불경 등을 깊이 연구하여 유가의 경전과 비교분석한 뒤 옳은 것은 인정하고 그르다고 인정되는 것은 비판하였다.
1714년(숙종 40) 진사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1717년 정릉참봉(靖陵參奉)에 기용된 뒤 순탄하게 관계에 있다가 1743년(영조 19) 금성현령을 끝으로 사직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후진을 육성하면서 지냈다.
마을에 충신과 효자, 열녀 등을 찾아 포상을 상신하고 정려각을 세우는 등 지방문화 발전에 기여하였다. 저서로는 『동계유고(東溪遺稿)』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