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성(陽城). 아버지는 도첨의시중(都僉議侍中) 이춘부(李春富)이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였다. 용맹이 있고 군사에 능하여 강릉도절제사로 있을 때 침입한 왜구를 격퇴하여 큰 공을 세웠다.
1371년(공민왕 20) 아버지 이춘부가 신돈(辛旽)의 일당으로 처형되자 노비가 되어 강릉으로 추방되었다. 우왕 때 복권되어 1387년(우왕 13)에는 좌상시(左常侍)에 올랐다. 뒤에 조민수(曺敏修)의 일파로 창왕을 세우는 데 가담하였다 하여 이성계(李成桂)일파의 공격을 받아 파직되었다.
조선 건국 이후 물러나 있다가 1398년(태조 7) 중추원사(中樞院使), 1400년(정종 2) 조전절제사(助戰節制使), 1405년(태종 5) 판한성부사, 이듬해 검교참찬의정부사(檢校參贊議政府事)를 지냈고, 1409년 개성유후사유후(開城留後司留後)로 있을 때 죽었다. 시호는 정절(靖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