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5년(선조 18) 문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호남의 요충지 나주목사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담략이 뛰어나다 하여 도원수 권율(權慄)이 충청감사로 전임시킬 것을 천거하였으나 당시 왜군이 제주도로 침구한다는 풍문이 있었고, 나주목사의 적당한 후임자가 없다하여 그자리에 머물러 있다가 1596년 경상감사로 전임되었다.
이 때 왜군의 선봉장 가토[加藤淸正]가 진격하여오자 권율장군이 비안까지 추격하였으나 미치지 못하였으며, 순찰사였던 이용순은 의성군 북산(北山)에서 왜군의 급습을 받아 물러섰다. 그 뒤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승임되었는데 조신간에 그 불가함을 들어 탄핵하는 자가 그치지 않았다.
1598년 윤두수(尹斗壽)가 강화무사 2,000여 명을 이용순으로 하여금 훈련시켜 입위(入衛)하게 하면 갑자기 일어나는 우환을 막을 수 있다고 선조에게 아뢰었으니, 임진왜란 중에 전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599년 충청감사로 전임되고, 그 해 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다.
1603년 함경북도병사에 전임되었는데, 경원·경흥·은성 등지에 여진족의 침범이 몹시 심함을 보고 그들을 귀순하게 하는 길은 군량미를 확보한 뒤 정예한 포사수(砲射手) 5,000∼6,000명을 훈련시켜 이 지방에 상주하게 하여 은위(恩威)를 병행하게 하는 것이 첩경임을 여러 차례 상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