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선천 출신. 1907년 4월 양기탁(梁起鐸)·안창호(安昌浩) 등을 중심으로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결사인 신민회(新民會)가 창립되자 이에 가입, 평안북도지회에서 활동하였다.
신민회의 무관학교설립과 독립군기지창건운동을 저지하고 신민회를 해체시키기 위하여 일제가 데라우치총독암살음모사건을 조작, 전국의 800여명의 신민회회원을 일거에 검거할 때 붙잡혀 1912년 9월 징역 6년형을 언도받았다.
공판투쟁을 완강히 전개하여 1913년 7월 항소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았으나 실질적으로 2년간의 옥고를 겪었다. 출옥 후 미국으로 망명, 1919년 39명의 동지와 함께 일본천황에게 독립선언문을 보내고,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하였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90년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