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중실(仲實). 호는 백원(白園). 1910년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재미한국인들이 발간하는 『국민보』·『신한일보(新韓日報)』·『한민보』 등의 총지국을 경영하면서, 각 지역 동포들의 통신연락업무를 맡아 활약하였다.
191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갑(李甲) 등과 함께 항일운동 및 교민들의 경제적 지위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권업회(勸業會)를 조직하였다. 1919년에는 여준(呂準)과 함께 독립군자금모금활동을 하였다.
1920년에는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의 위촉으로 체코군으로부터 다수의 무기를 구입하여 서일(徐一)에게 전달하였으며, 1923년에는 북중국에서 신덕영(申德永) 등과 함께 독립군자금모금활동을 하였다.
1927년 중국 산서성 타이위안[山西省太原]에서 안창남(安昌男)·최양옥(崔養玉)·김정련(金正連)·신덕영 등과 함께 독립군 비행사를 양성하기 위한 비행학교설립을 계획하고, 흑룡강성에 토지 300만평을 구입하기로 하였다.
이에 자금모집차 1929년에 동지 최양옥·김정련·이선구(李善九) 등이 국내에 잠입, 서울교외 망우리에서 일본우편자동차를 비롯하여 지나가는 차량들을 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는 공명단사건(共鳴團事件)이라 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