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홍부(洪夫). 좌참찬 이재(李縡)의 현손이며, 이광문(李光文)의 아들이다.
1835년(헌종 1) 생원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40년 대교(待敎)가 되었고, 1842년 강원도암행어사를 지냈으며, 그 후 부사과 · 성균관대사성을 지냈다.
1849년(철종 즉위년) 이후 이조참의 · 홍문관부제학 · 경기도관찰사 · 이조참판 · 규장각직제학 · 한성부판윤 등을 두루 역임하였고, 1859년 의정부우참찬 · 사헌부대사헌을 거쳐, 1863년 예조판서가 되었다. 1864년(고종 1) 예문관제학이 되었고 실록교정당상에 임명되었다.
1865년 대사헌을 지냈고, 이듬해에 홍문관제학이 되었다. 1867년 다시 대사헌이 되었고, 1869년 공조판서를 지냈으며, 1873년 형조판서 · 광주부유수(廣州府留守)가 되었다. 1875년 의정부좌참찬 · 홍문관제학 · 좌부빈객(左副賓客)을 지냈다.
1876년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에 시강원우빈객(侍講院右賓客)이 되었다. 1878년 홍문관제학 · 국장도감제조(國葬都監提調)를 지냈으며, 판의금부사를 역임하였다. 1880년 규장각제학 · 판돈녕부사를 지냈다. 저서로 『연사일록(燕槎日錄)』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