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강계 출신.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고 일본경찰주재소를 습격한 뒤 만주로 망명하여, 1919년 12월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통신연락 및 조직책임자로 활동하였다.
1925년 음력 4월 의용군 모집을 위하여 국내에 잠입, 활동하였으며, 같은 해 음력 8월 다시 국내에 잠입, 활동하다 일본경찰에 붙잡혀 같은해 11월 24일 평양지방법원에서 강도죄명으로 징역 6년형을 언도받고, 3년 8개월간 복역하였다.
1929년 10월 다시 만주로 망명하여, 1936년 음력 3월 2일 봉천(奉天)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포고문을 전달하다 일본경찰에 잡혔다.
평양으로 압송된 뒤 미결감에 있다가 1945년 8월 2일 재판에 회부되어 15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하던 중, 같은 달 10일 병보석으로 출옥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