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술조(述祖). 할아버지는 태종의 부마 이정녕(李正寧)이며, 아버지는 우찬성 이집(李諿)이다.
1483년(성종 14) 사마시에 합격하여 제용감참봉에 기용되었다. 이어서 봉사·직장·주부를 거쳐 호조와 공조의 좌랑을 지냈다.
1488년 왕이 선농단(先農壇)에 친제할 때 제헌관의 찬자(贊者)가 되어 의식의 진행을 도왔다. 1492년 지평이 되었으나 왕에게 직언한 일 때문에 판관으로 좌천되기도 하였다. 이어서 경기·충청·황해를 제외한 5도의 경차관(敬差官)이 되어, 말썽이 많은 전정(田政)을 점검하고 돌아와서 형조정랑을 거쳐 첨정에 올랐다.
1504년(연산군 10) 광주목사를 지내고 이어서 진주목사를 지냈는데, 해이해진 민심을 수습하고 학교를 권장하며 농업을 진흥시켜 현저한 치적을 남겼다. 1506년 임사홍(任士洪) 등 권간의 미움을 사서 제주목사로 좌천되었다가, 9월에 중종반정으로 소환되어 돌아오는 길에 추자도(楸子島)에서 왜구를 만나 일행이 모두 죽음을 당하였으나 이운거는 무사히 돌아왔다.
그 뒤 수원·남원·남양·연안·안동 등 5주의 부사를 역임하고 돌아와서 동지돈녕부사에 이르렀다. 사람됨이 강직하고 거리낌이 없어 임금 앞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직언을 잘하였다. 이런 까닭에 권간의 미움을 받아 외직을 전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