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선장(善長). 선전관 이익권(李益權)의 아들이다.
여러 무관직을 두루 역임한 뒤 1858년(철종 9) 경상좌도병마절도사에 오르고, 이듬해 우포도대장 재직중 돈의문(敦義門)에서 발생한 괘서사건의 범인을 체포하지 못한 책임으로 파직당하였다.
뒤에 재기용되어 1864년(고종 1) 황해병사를 거쳐 1866년 행호군이 되었다가 병인양요로 인하여 프랑스군대를 물리치기 위하여 총융청(總戎廳) 중군으로 임명되어 강화에 파견되었다. 그 해 10월 강화도 양화진(楊花津)에 진을 친 뒤 프랑스군대에 대항하여 싸웠으며, 소모사(召募使)가 되어 경기일원의 장정을 모집하기도 하였다.
그 뒤 11월 다시 우포도대장이 되었고, 1869년 형조판서에 올랐으며, 이듬해 어영대장·훈련대장·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 등을 역임하였다. 같은 해 7월 공조판서에 임명되고, 1871년 지삼군부사(知三軍府事)를 지냈다. 시호는 정희(靖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