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진주권번에 입적하여 1937년최완자(崔完子)로부터 진주검무를 전수받았으며, 배울 당시 김자진(金子眞), 이윤례(李潤禮), 최예분(崔禮分) 등과 같이 전수받았다.
진주검무 제1기 이수자가 배출되었단 1950대에 왕성한 활동을 펼치기 시작하여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기능보유자로 지정받았다.
그 이후 검무전수활동에 전념하였고, 1977년∼1985년에 의기사(義技飼) 수호(守護)겸 창열회 회장을 지냈고 1977년∼1992년에는 논개(論介)부인 제향담당을 해왔다.
평소 진주검무보다 시조에 더욱 능하였다는데 활동할 당시 연습장소는 따로 없었으며, 촉석루누각에서 연습하고 공연 때에는 부산에서 악사들이 와서 연주를 하였으며 대금은 김동근과 그의 동생이 와서 연주를 하였다고 한다.
거주지는 진주시 옥봉동이었으며, 당시 생계유지가 힘들어 춤을 출 사람들도 없어서 오히려 학생들에게 밥을 싸주며 지도하였고, 명절 때 버선 등을 학생들에게 선물을 해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