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안(淸安). 자는 태영(泰英), 호는 퇴사재(退思齋). 1566년(명종 21) 무과에 급제하여 오위부장(五衛部將)이 되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우 이우춘(李遇春)·이봉춘(李逢春), 아들 이승회(李承會)와 창의를 부르짖었다.
노복(奴僕)·이민(里民) 300여 명을 거느리고 의병을 일으켜 산곡(山谷)으로 출입하면서 전후 수십차례의 전투에서 많은 적군을 무찔렀다. 다시 전진(戰陣)을 개운포(開雲浦)로 옮겨 바다에서 상륙하는 적을 맞이하여 싸우다 중과부적으로 전사하였다. 1832년(순조 32)에 그 아들 고훈련원정(故訓鍊院正) 이승회(李承會)와 함께 증직되고 포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