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호연(浩然), 호는 설천(雪川). 경주 출생. 증조부는 이번(李蕃)이고, 조부는 문원공 이언적(李彦迪)이며, 아버지는 이응인(李應仁)이다.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로 세마(洗馬) 장응기(張應機)의 딸이다.
1610년(광해군 2)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하고, 2년 뒤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호조좌랑을 거쳐 감찰이 되었다가 고령현감을 역임하였다. 1618년(광해군10) 증광시에 급제하여 전적을 지내고 함경도사로 나갔다. 1620년 이이첨(李爾瞻) 등이 전횡을 하게 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1623년(인조 1) 반정이 성립되어 흥해군수에 발탁되었는데, 지나간 폐정을 바로잡고 백성을 진휼하여 선정을 베풀었으며 탐관오리의 부정을 근절하였다. 1627년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주야로 집무하다가 병을 얻어 군청에서 순직하였다. 저서로는 『설천문집(雪川文集)』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