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위현(振威縣: 지금의 경기도 평택) 출신이다. 거란이 침입하여 국내가 소란한 틈을 타, 1218년(고종 5) 영동정(令同正)으로 직장동정(直長同正) 이당필(李唐必), 별장동정(別將同正) 김례(金禮) 등과 함께 난을 일으켰다. 무리를 모아 진위현령의 부인(符印)을 빼앗고 창고를 열어 촌락의 굶주린 백성들을 진대(賑貸)하니 많은 사람들이 귀부하였다. 스스로 ‘정국병마사(靖國兵馬使)’를 칭하고 군대를 의병(義兵)이라 하여 군(郡)에 통지를 한 다음, 종덕창(宗德倉)과 하양창(河陽倉)의 곡식을 백성들에게 마음대로 나누어주었다.
이어 광주(廣州)로 향하려 하였는데, 이 때 낭장 권득재(權得才), 산원 김광계(金光啓), 안찰사 최박(崔博) 등이 거느린 군사들로부터 공격을 받아 상주로 달아났으나 안찰사에게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었다가 죽음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