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지평(砥平)이다. 대장군을 지낸 이준선(李俊善)의 아들이다.
내시(內侍)에 속하였다가 합문지후(閤門祗候)가 되었으며 뒤이어 병부낭중이 되었다. 1216년(고종 3) 거란의 금산(金山)·금시(金始) 등이 9만의 무리를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침입하자, 우군병마판관이 되어 강원도 고성의 환가역(豢猳驛)에서 적을 물리쳐 공을 세웠다. 장작감(將作監)이 되고 좌군병마부사가 되었으며, 광탄(廣灘)에서 적을 무찔러 공을 세워 장군에 임명되었으나 굳이 사양하고 경상도안찰사가 되었다. 이듬해 적이 재차 침입하자 경상도안찰사로 군사를 이끌고 나가 적을 무찔렀다.
1218년 상서좌승(尙書左丞)이 되었으며, 그 해 거란적이 강동성(江東城)에 입보(入保)하자 병마사가 되어 강동성을 함락하고, 난이 평정되자 그대로 머물러 동북면병마사가 되었다. 1219년 우승선이 되었고, 1221년(고종 8) 12월 추밀원부사 상서좌복야, 이듬해 12월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1223년 12월 지추밀원사를 거쳐 1225년 9월 추밀원사 어사대부(樞密院使御史大夫)로서 세상을 떠났다.
사람됨이 평범하고 온유하여 기쁨과 노여움을 나타내지 아니하고, 평시에는 담기가 없는 것 같으나 군진(軍陣)에 나가 용기를 낼 때는 남이 따르지 못하였다. 성품이 검소하여 높은 지위에 이르러도 항상 누추한 집에 거처하면서 태연자약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