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린(聖鄰). 아버지는 훈련대장 이요헌(李堯憲)이며, 어머니는 반남박씨(潘南朴氏)로 박준원(朴準源)의 딸이다.
1822년(순조 22) 가순궁수빈박씨(嘉順宮綬嬪朴氏)의 상에 빈궁장례도감(嬪宮葬禮都監)의 종척집사(宗戚執事)가 되어, 장례절차를 계획대로 치르도록 주선하여 그 공으로 말 1필을 하사받았다.
1827년(순조 27)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박사에 기용되고 이어 부수찬·수찬·응교 등을 역임하였다. 1827년 통정의 계에 올라 충주목사로 나갔다. 이듬해 내직으로 승차된 뒤 경연에 나가 『논어』를 강의하였고, 이듬해 예방승지가 되었다.
1831년 다시 개성유수로 나갔으며, 이듬해 이조참판으로 승차하였다. 이어 동지성균관사(同知成均館事)를 거쳐 1835년에 다시 이조참판으로 옮겼다. 1845년(헌종 11) 도승지를 거쳐 이듬해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1848년 형조판서에 오르고, 이듬해 헌종의 국상에는 산릉도감제조가 되어 국장의절 일체를 관장, 처리하였다. 1850년 다시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하고 곧 이어 공조판서에 임명되었다.
사람됨이 치밀하여 정무나 시사에 있어 일을 처리하는 데 차질이 없었으므로 국가의 어려운 일은 도맡아서 정리하여 역대왕의 신임을 받았다. 시호는 효헌(孝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