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총통대장 등을 역임하여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종실·공신.
이칭
  • 시호양경(襄頃)
  • 유안(幼安)
  • 이칭율원군(栗元君)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이시애의 난
  • 본관전주
  • 사망 연도1476년(성종 7)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광성대부(光成大夫) 율원령(栗元令)|보신대부(保信大夫) 부정|창선대부(彰善大夫)|함길남도절도사
  • 출생 연도1433년(세종 1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차문섭 (단국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총통대장 등을 역임하여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종실·공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유안(幼安).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𥙷)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보성군(寶城君) 이합(李㝓)이다. 어릴 때부터 독서를 좋아하였으며 무예에도 뛰어났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47년(세종 29) 광성대부(光成大夫)로 율원령(栗元令)에 봉하여지고, 1457년(세조 3) 보신대부(保信大夫) 부정으로 승급하고, 1460년(세조 6) 경서에 통달하여 창선대부(彰善大夫)로 가자(加資)되었다.

하루는 세조가 종친 가운데 학식과 무예가 있는 자를 모아 문·무의 시험을 보았는데, 그가 양쪽에 모두 뽑혀 총애를 받으니, 병사들의 사열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장수로 임명하였다.

1463년(세조 9) 평안도 국경지대인 방산진(方山鎭)에 야인이 침입하자 세조가 명선대부(明善大夫)로 삼아 이를 진압하게 하였다.

1467년(세조 13) 5월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다시 정의대부(正義大夫) 율원군(栗元君)에 가자되어 총통대장(銃筒大將)으로 출정하여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중의대부(中義大夫)로 승계하는 동시에 적개공신(敵愾功臣) 3등에 녹훈되고 함길남도절도사에 특배되었으나 이듬해 병으로 소환되었다.

성품이 심중하여 일을 대하면 상밀하게 관찰하고 사람을 접하면 겸손하고 공경스럽게 대하였다. 시호는 양경(襄頃)이다.

참고문헌

  • - 『세조실록(世祖實錄)』

  • - 『예종실록(睿宗實錄)』

  • - 『성종실록(成宗實錄)』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