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5년(고종 12) 곧바로 전시(殿試)에 나아가 사악(賜樂)하였다. 강화도조약이 체결되던 1876년 한권(翰圈)에 들었으며, 1878년에는 본관록(本館錄)에 들었고 1879년에는 도당록(都堂錄)과 직각권(直閣圈)에 들었다.
1881년 장령과 수찬을 지냈으며, 임오군란이 일어나던 1882년 필선(弼善)과 우부승지를 역임하였다. 1883년 참의군국사무(參議軍國事務)가 되었으며, 총판(總辦)에 임명되었다. 1885년 동지춘추관사(冬至春秋館事)가 되었고, 진주부사(陳奏副使)로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였으며, 감시복시시관(監試覆試試官)을 지냈다.
1886년 이조참판이 되었으며, 이듬해에는 성균관대사성에 임명되었고, 주진독리(駐津督理)에 차하되었다. 1888년 협판교섭통상사무(協辦交涉通商事務)와 서리독판사무(署理督辦事務)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