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연(子淵), 호는 서간(西澗). 이경직(李景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기영(李起英)이고, 아버지는 충청도관찰사 이덕성(李德成)이며, 어머니는 홍유구(洪有龜)의 딸이다.
1713년(숙종 39) 생원시에 합격하고, 1723년(경종 3)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설서(說書)·정언(正言)·부사과·지평(持平)을 지냈다. 1724년 수찬이 되어 형벌을 너그럽고 공평하게 하였으며, 첨설된 서원을 철폐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어 해백목사(海伯牧使)가 되었으며, 1725년(영조 1) 붕당의 폐해를 고치기 위하여 신임사화를 일으킨 소론인들을 죄줄 때, 김일경(金一鏡)의 당으로 지목되어 선천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어머니의 병환으로 풀려나 1729년 승지가 되고 뒤에 황해도관찰사를 지냈다. 글씨를 잘 썼으며, 작품으로는 「기자궁구기비문(箕子宮舊基碑文)」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