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남도 북청 출신. 1919년 4월 17일 최석(崔錫)과 함께 서간도의 환인현 홍석뢰자(桓仁縣 紅石磊子)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으며, 이어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 활동하였다.
그 뒤 다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입대하여 1920년 8월 정무총장 이탁(李沰)의 명을 받고 이종식(李宗植) 등과 함께 국내에 잠입하여 같은해 9월 1일에 친일파로 알려진 후창군수 계응규(桂應奎)를 총살하였다.
그러나 거사 뒤 일본경찰에 잡혀 1921년 2월 고등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같은해 4월 평양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