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의성군에 봉해진 종실.
이칭
  • 이칭의성군(誼城君), 이용(李㝐), 호민(胡敏)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주
  • 사망 연도1493년(성종 24)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411년(태종 1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영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의성군에 봉해진 종실.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이용(李㝐). 효령대군(孝寧大君)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좌찬성 정역(鄭易)의 딸로 예성부부인(蘂城府夫人)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24년(세종 6) 의성군(誼城君)에 봉해졌다. 성품이 온순하고 선량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검소하여 그 덕이 종친의 으뜸으로 존경받았다. 왕족이면서도 담백 검소한 생활을 하였고, 학문을 좋아하여 경사(經史)에 널리 통하였다.

1431년 특별히 정헌대부(正憲大夫)에 가자(加資)되고 1434년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올랐다. 1443년 경주(慶州)에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수용(睟容)이 봉안될 집경전(集慶殿)이 완성되자 수용 봉안사(奉安使)가 되었으며, 1444년 봉군제도 개정에 따라 소덕대부(昭德大夫)에 개수되고, 1450년 세종이 승하하자 대전관(代奠官)을 맡은 다음 흥록대부(興祿大夫)에 특가되었다.

1486년(성종 17) 아버지 효령대군의 거상이 끝난 뒤 아우, 조카들의 재산 분배 문제 송사로 탄핵을 받았으나 곧 사면되고, 1489년(성종 20)에는 현록대부(顯祿大夫)에 올랐다. 시호는 호민(胡敏)이다.

참고문헌

  • - 『세조실록(世祖實錄)』

  • - 『성종실록(成宗實錄)』

  • - 『종반행적(宗班行蹟)』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