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사상강설(四上講說)」, 『내범요람(內範要覽)』 등을 저술한 학자. 항일운동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강제 체결되자 기의려문(起義旅文)을 지어 거사(擧事)하려다가 실패하였다. 1908년 돈암서원(遯菴書院)과 부여향교(夫餘鄕校)에서 신학문을 가르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각각 편지로 부당함을 전했다.
다음 해 왜인(倭人)들이 고종(高宗)의 칙명이라며 국민의 호적(戶籍)을 만들려고 하자, 이에 반대해 일본 정부에 장서(長書)를 보내 그들의 간상(奸狀)을 낱낱이 지적하였다. 홍산(鴻山) 경찰서에 이송되었다가 석방되었다.
1914년 다시 부여 왜경주재소(倭警駐在所)에 잡혀가 70여 일 동안 구금되었고, 1918년 호적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시 부여 왜경주재소에 잡혀갔다가 석방되었다. 또한 왜인들의 정령(政令)을 일체 거부했으므로 온갖 고초를 겪고 산판(山坂)을 수탈당하기도 하였다.
이철영은 또한 성리설에 조예가 깊어 당시 고질적 폐단이 되어 온 성리논쟁(性理論爭)에 대해 율곡설(栗谷說)로 미루어 종합 절충론인 「사상강설(四上講說)」을 지어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공주(公州)의 숭의사(崇義祠)에 봉향되었고, 저서로는 『성암집(醒菴集)』 4책과 한글 『내범요람(內範要覽)』 1책이 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기려수필(騎驪隨筆)』
- 『성암집(醒菴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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