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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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사상강설(四上講說)」, 『내범요람(內範要覽)』 등을 저술한 학자. 항일운동가.
이칭
  • 계형(季衡)
  • 성암(醒菴)
인물/전통 인물
  • 본관경주(慶州)
  • 사망 연도1919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67년(고종 4)
  • 출생지공주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해권 (고려대학교도서관,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사상강설(四上講說)」, 『내범요람(內範要覽)』 등을 저술한 학자. 항일운동가.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형(季衡). 호는 성암(醒菴). 아버지는 이홍제(李弘濟), 어머니는 상산 박씨(商山朴氏) 통덕랑(通德郞) 박용원(朴龍遠)의 딸이다. 공주(公州) 중호(中湖)에서 출생했고, 유대원(柳大源)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04년 왜인(倭人)들이 철도 부설(鐵道敷說)을 서둘러 공주(公州)에 있는 선영(先瑩)을 침범하게 되자, 유림(儒林)의 진정서(陳情書)를 갖고 관계자를 찾아가 항의 이동(移動)하게 하였다. 다음 해 이유태(李惟泰)의 『사서답문(四書答問)』을 교정 발간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강제 체결되자 기의려문(起義旅文)을 지어 거사(擧事)하려다가 실패하였다. 1908년 돈암서원(遯菴書院)과 부여향교(夫餘鄕校)에서 신학문을 가르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각각 편지로 부당함을 전했다.

다음 해 왜인(倭人)들이 고종(高宗)의 칙명이라며 국민의 호적(戶籍)을 만들려고 하자, 이에 반대해 일본 정부에 장서(長書)를 보내 그들의 간상(奸狀)을 낱낱이 지적하였다. 홍산(鴻山) 경찰서에 이송되었다가 석방되었다.

1914년 다시 부여 왜경주재소(倭警駐在所)에 잡혀가 70여 일 동안 구금되었고, 1918년 호적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시 부여 왜경주재소에 잡혀갔다가 석방되었다. 또한 왜인들의 정령(政令)을 일체 거부했으므로 온갖 고초를 겪고 산판(山坂)을 수탈당하기도 하였다.

이철영은 또한 성리설에 조예가 깊어 당시 고질적 폐단이 되어 온 성리논쟁(性理論爭)에 대해 율곡설(栗谷說)로 미루어 종합 절충론인 「사상강설(四上講說)」을 지어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공주(公州)의 숭의사(崇義祠)에 봉향되었고, 저서로는 『성암집(醒菴集)』 4책과 한글 『내범요람(內範要覽)』 1책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77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1990년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기려수필(騎驪隨筆)』

  • - 『성암집(醒菴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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