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우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주서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고 돌아와 학문 탐구에 전념하였으며, 「답이덕은서」, 『고암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 고암(古巖)
  • 사앙(士仰)
인물/전통 인물
  • 본관벽진(碧珍: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
  • 사망 연도1770년(영조 46)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714년(숙종 40)
  • 출생지칠곡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능하 (단국대학교동양학연구소,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고암문집 미디어 정보

고암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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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주서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고 돌아와 학문 탐구에 전념하였으며, 「답이덕은서」, 『고암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사앙(士仰), 호는 고암(古巖). 출생지는 칠곡(漆谷). 아버지는 이항춘(李恒春)이며, 어머니는 상산김씨(商山金氏) 김시옥(金是沃)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총명이 뛰어나 13세 이전에 『상서(尙書)』·『주역(周易)』·『춘추(春秋)』 등을 다 읽었다. 1762년(영조 38)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주서(承文院注書)에 올랐으나 나이가 많은데다 적성에도 맞지 않아 그만 사직하고 돌아와 학문 탐구에 전념하였다. 이상정(李象靖)·최흥원(崔興遠) 등이 강마의 친구였다.

학문은 역시 경학(經學)을 비롯하여 성리학(性理學)을 기본 목표로 삼았으나 정주(程朱) 학설 일변도의 시대에서도 정주만을 맹신하지 않고 여타 학설들도 수용한 듯하다. 그 실증으로 「답이덕은서(答李德隱書)」가 있다. 저서로는 『고암문집(告巖文集)』 2권이 있다.

참고문헌

  • - 『고암문집(古巖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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