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할아버지는 인조의 셋째 아들인 인평대군 이요(麟坪大君 李㴭)이며, 할머니는 복천오씨(福川吳氏)로 감사 오단(吳端)의 딸이다. 아버지는 복녕군 이욱(福寧君 李栯)이며,어머니는 양천허씨(陽川許氏)로 지평 허열(許悅)의 딸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의원군(義原君)에 봉해졌다. 고종의 아버지 대원군이하응(李昰應)의 5대조로 조선왕조의 후사를 잇는 데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학문을 깊이 연구하여 문장에 뛰어났고 예론에도 조예가 깊었다. 천성이 간탐(慳貪: 탐욕스러움)하여 불법으로 백성의 재물을 침해한 관계로 대간의 청에 의하여 봉작을 삭탈당하였다.
1688년(숙종 14) 결성현감으로 있을 때 정부의 보관용인 저치미(儲置米)를 모두 가져다가 사용(私用)하였으므로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직첩이 환수되었으나 이듬해 복작되었고, 1722년(경종 2)에 남의 토지를 부정한 방법으로 점유하였다가 사헌부의 탄핵으로 몰수되어 되돌려준 일이 있다.
1680년에는 종실인 이정(李楨)에게 입양되었으나 부정과 간탐으로 인하여 파양환종(罷養還宗: 양자의 자격을 파하고 원래의 가문으로 돌아감)의 처분을 받았다.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저서로는『사례찬설(四禮纂說)』8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