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승림(承林). 함경남도 단천 출신. 1905년 만주로 이주하였으며, 1919년 김숙림(金肅林)·윤세복(尹世復)·김성규(金星奎) 등과 백두산 서남쪽 무송현(撫松縣)에서 흥업단(興業團)을 조직, 산업진흥·무력충실에 힘쓰며 화룡현(和龍縣)의 대종교총본사, 왕청현(汪淸縣)의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1922년 4월경 군비단(軍備團)·태극단(太極團)·광복단(光復團) 등의 단체를 통합하여 광정단(光正團)을 조직하고 외교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4년 다시 통의부(統義府)와 통합하여 정의부(正義府)를 조직하였다.
1925년 동지들과 돈화현(敦化縣)으로 이주하여 대종교 시교당(施敎堂)을 설치하고 농토를 개간하며 재만동포의 생계안정을 도모하였다. 1926년 그곳에 교민자치기관인 고려동향회(高麗同鄕會)를 조직하여 회장이 되었으며, 1927년에는 국토도매방지위원회(國土盜賣防止委員會) 위원장으로서 활동하였다.
1935년 영안현(寧安縣) 동경성(東京城)으로 이주하여 대종교 총본사찬리(總本司贊理)로서 민족종교 전도에 진력하였다. 1942년 임오교변에 이은 추가검속으로 1943년 일본경찰에 붙잡혀 1944년 목단강(牧丹江) 고등법원에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45년 광복 직전 소련군의 만주진출로 출옥하였다.
영안현에서 교주 윤세복을 중심으로 대종교 총본사를 재건하고 전범(典範)에 임명되어 활동하다가 1946년 귀국하였다.
1968년 대통령표창이,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