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사범(士範). 상주 출신. 태어나면서부터 여력이 남보다 뛰어나서 무술을 연마하였다.
1734년(영조 10)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벼슬을 원하지 않고 향리로 돌아갔다. 훈련원과 어영청에서 초관(哨官)으로 불렀으나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병조판서도 그의 재주를 알고 여러 번 불렀으나 번번이 응하지 않으므로, 병조 등에서 왕명부종으로 나포할 것을 소를 올려 시행하게 명하였다. 그의 뜻과는 달리 나포되어 서울로 압송된 지 2일 만에 의금부도사에 임명되고 이어서 철산부사로 나갔다.
왕이 부임하기 전에 고을을 다스리는 방법을 친문하니 그는 치민칠조(治民七條: 백성을 다스리는 데 필요한 일곱가지 조문)로 대답하여 왕의 신임을 받았다.
뒤에 전라도수사가 되어서는 바다로부터 침입하는 적에 대비하기 위한 선박의 중요함을 강조, 선박의 건조와 성지 수축 및 병기 정비 등 국가방어에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