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일

  • 역사
  • 인물
  • 개항기
  • 현대
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군의 분대장으로, 봉오동전투에서 활약하며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 관련 사건봉오동전투
  • 사망 연도1945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82년(고종 19)
  • 출생지함경북도 경성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재홍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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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군의 분대장으로, 봉오동전투에서 활약하며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함경북도 경성(鏡城) 출신. 1910년 경술국치 후에 아버지 이방윤(李芳允)과 함께 만주의 간도 화룡현(和龍縣)으로 이주하여 황무지를 개간,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였다. 1919년 홍범도(洪範圖) 휘하의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에 입대하여 제2중대 제3소대 제1분대장으로 활발한 독립전쟁을 수행하였다.

1920년 대한독립군의 빈번한 국내 진입작전으로 한만국경지대의 식민통치가 마비되자, 일본은 대규모의 일본군을 만주에 투입하여 독립군을 소탕하려고 획책하였다. 그 해 6월 일본군 1개대대 병력이 대한독립군의 본거지를 공격하여 왔다. 이에 독립군은 반격작전을 감행하여 일본군 120여 명을 사살하는 대전과를 올렸다.

7월 7일 일본군이 다시 공격을 시도할 때 이화일부대는 고려령(高麗嶺) 서쪽고지에 매복해 있다가 급습하여 일본군 전위중대(前衛中隊)를 전멸시키는 큰 전과를 거두었다. 이 일련의 전투가 한국독립운동사상 유명한 봉오동전투이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한국독립운동사』3(국사편찬위원회, 1967)

  • - 『독립신문(獨立新聞)』(대한민국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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