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남도 초산 출신. 1919년 3·1운동 이후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에 입대하여 항일전투에 참전하였다. 1922년 만주 환인현(桓仁縣)에서 채상덕(蔡尙悳) 등이 조직한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에 가입하여 제1중대원으로 그 해 6월 1일 강계방면에 진입하여 일본경찰 2명을 사살하고 주재소 등을 소각하였다.
1923년 6월 의군부(義軍府) 제1중대원으로 소대장 전용휴(田龍畦)의 지휘 아래 대원 백운기(白雲基)·김석홍(金錫弘)·한권웅(韓權雄)·박제환(朴濟煥)·이선택(李善澤) 등과 같이 강계방면으로 출동, 그 곳 어뢰면(漁雷面) 일본경찰관주재소를 습격, 소각하고, 이어서 풍청동(豊淸洞) 주재소도 공격하여 파괴한 뒤 귀대하였다.
1924년 참의부(參議府) 제1중대원으로 활동하고 있을 때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가 국경지방을 시찰하기 위하여 중강진에서 신의주까지 배를 타고 내려온다는 정보를 입수, 소대장 한권웅의 지휘아래 5월 19일 6명씩 2개조로 나누어 강변에 매복하였다.
그러나 총독이 탄 배가 다가오자 사격하였으나 사살하지는 못하였다. 이 해 6월 다시 국내에 잠입하여 활동 중 강계군 종서면에서 일본경찰과 치열한 교전끝에 잡혀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광복으로 출옥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