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신의 높이 205㎝, 너비 77㎝, 두께 22㎝. 비는 해발 150m의 응봉산 서쪽 능선의 묘역 아래에 위치하며, 현재 비각(碑閣) 안에 보호되고 있다.
비의 건립은 이회가 사망한 35년 뒤인 1587년(선조 20)에 이루어졌는데, 화강암제 받침돌 위에 비신(碑身)과 이수(螭首)를 한 덩어리 대리석으로 세웠다. 이수에는 쌍룡이 여의주를 다투는 모습이 힘차게 새겨져 있다.
비문은 좌의정 김귀영(金貴榮)이 짓고 글씨는 선조 때의 명필 석봉(石峯) 한호(韓濩)가 썼으며 두전(頭篆)은 도승지 김응남(金應南)이 썼다. 비문은 비신 앞뒤에 새겨져 있는데, 표면이 좀 마멸되기는 했으나 내용은 거의 판독된다. 글씨는 단정한 해서이며 두전 역시 엄정한 소전(小篆) 풍이다.
비문에는 이회의 생애가 기술되어 있다. 그는 성종의 일곱째 아들로 자는 순지(順之)이고, 1496년(연산군 2) 익양군(益陽君)에 봉해졌으나 연산군의 실정이 계속되자 두문불출하다가 1506년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원종공신이 되었으며, 그 뒤 종부시 제조, 종친부 유사 등의 종실관계 일을 맡았다. 시호는 순평(順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