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효

  • 예술·체육
  • 인물
조선시대 「산수도」, 「팔경도」 등을 그린 화가.
이칭
  • 중순, 仲順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주(全州)
  • 사망 연도1593년(선조 26)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537년(중종 3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홍선표 (홍익대학교 박물관, 회화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설경산수도 / 이흥효 미디어 정보

설경산수도 / 이흥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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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산수도」, 「팔경도」 등을 그린 화가.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중순(仲順). 이상좌(李上佐)의 아들이다. 화원이었으며 수문장을 지냈다. 허균(許筠)이 찬한 「이정애사(李楨哀辭)」에 의하면, 형 이숭효(李崇孝)가 일찍 죽자 조카인 이정(李楨)을 맡아 양육하며 화가로 대성시켰다고 한다.

생애 및 활동사항

그리고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稗官雜記)』에는 그림을 잘 그려 명종의 어용(御容)까지 그리고 군직(軍職)을 제수받았으며, 김시(金禔)의 필법을 좋아하였다고 전한다.

유작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소장의 「팔경도(八景圖)」와 그가 죽던 해인 1593년 임진왜란을 피하여 홍양(지금의 전라남도 고흥)에서 그린 「산수도」(개인 소장) 한 폭만이 전하여지고 있다. 「팔경도」에서는 단선점준(短線點皴)이 구사되어 있는 등 조선 초기 안견파 화풍의 전통을 엿볼 수 있다.

「산수도」에는 주봉(主峰)의 음영이라든가 토파(土坡)의 처리 및 바위의 준법(皴法) 등에 절파풍의 영향이, 그리고 근경의 수법(樹法)에서 조선 초기의 전통성이 간취되고 있다. 이와 같은 절충적 경향은 조카인 이정에게 계승되어 17세기 화단으로 이어졌다.

참고문헌

  • -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오세창, 계명구락부, 1928)

  • - 『한국의 미 11: 산수화 상』(안휘준 감수, 중앙일보사, 1980)

  • - 「한국절파화풍의 연구」(안휘준, 『미술자료』20, 국립중앙박물관, 19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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