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김범주의 아들 김희건(金熙建)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이태일(李泰一)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정준상(鄭準相)과 조카 김희찬(金熙燦)의 발문이 있다.
4권 1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과 고려대학교 도서관·연세대학교 도서관·성균관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2에 시 20수, 잡저 2편, 서(書) 2편, 제문 12편, 권3·4에 부록으로 제문 14편, 행장 1편, 묘갈명 1편, 유사 1편, 후지(後識) 2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온건하면서도 성당(盛唐)의 시풍이 있고 사실적인 품격이 있다. 「차증사농재주인(次贈士農齋主人)」은 선비와 농부의 일맥상통한 점과 서로 부조하는 관계에서 떨어질 수 없는 사유를 설명하고, 선비와 농부가 동격시되어야만 가난한 선비들이 생계를 유지하면서 학문에 전념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당시 사농(士農)을 동일시하는 사상을 표현한 것이다.
잡저의 「인해(忍解)」는 선비의 덕목으로 으뜸가는 인(忍)의 사상을 밝힌 것으로, 행복의 창조와 집안의 화평유지와 관계의 승진 등도 인이 기본이 된다고 설명하였다. 「파타설(破惰說)」은 학업에 정진하는 방법은 오직 게으름을 깨고 매진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옛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사실은 모두 이 파타에서 시작되었다고 설명하면서 열심히 노력할 것을 당부한 글이다.
서의 「답이후학래(答李侯鶴來)」는 군수 이학래에게 보낸 것으로, 흉년에 세금을 감면하는 일은 선정(善政)의 시초임을 강조하고,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고 부역을 경감하여 농사지을 시기를 빼앗지 않는 것이 훌륭한 관리(官吏)의 길이라고 설명하였다. 이 밖에도 문중의 기둥으로 믿었던 김원(金湲)이 죽자 그것을 애도한 「제종숙원문(祭宗叔湲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