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엄(日嚴)은 고려 명종 대 전라도 전주 일대에서 활동하던 승려이다. 생몰년이나 구체적인 활동 사항은 알 수 없다. 일엄은 장님과 귀머거리도 치료할 수 있고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설파하며 대중적으로 큰 호응을 일으켰다. 1187년(명종 17) 음력 9월, 전라주도안찰사(全羅州道按察使) 오돈신(吳敦信)에게서 일엄에 대한 소문을 들은 명종은 금극의(琴克儀)를 보내 개경으로 초빙하였다. 일엄은 개경에 와 보현원(普賢院), 천수사(天壽寺), 홍법사(弘法寺) 등에 머물며 설법을 했는데, 도성 안의 백성들이 몰려들어 가르침을 받고 제자가 되었으며, 여성들은 머리를 풀어 일엄의 발밑에 깔아 주기도 했다고 전한다. 임민비(林民庇), 문극겸(文克謙) 같은 조정의 중신들도 사찰로 일엄을 찾아와서 예를 갖추어 존경하였다고 한다.
당시 세간에서는 엄이 세수 · 양치하고 목욕한 물을 법수(法水)라고 일컬어 천금같이 귀하게 여겨 마시지 않는 자가 없었으며, 지나는 곳마다 사람들이 귀천을 막론하고 그를 알현하느라 마을이 텅 비었을 정도였다고 전한다. 일엄은 사람들에게 아미타불을 외게 하였고, “만 가지의 법(法)은 오직 마음에 달렸으니 너희가 부지런히 염불하며 내 병은 이미 나았다고 생각하면 병은 나을 것이다. 절대 병이 낫지 않는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며 사람들을 속였다고 한다. 명종은 결국 그가 거짓으로 사람들을 속인다는 것을 알고 다시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일엄에 대한 이야기는 고려 후기 사회에 계속 전해져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에는 전라북도 변산과 고창 지역에서 호랑이와 승려의 이야기〔호승지설(虎僧之說)〕로 남아 있다. 변산 지역 고승이 고창에서 만났던 함정에 빠져 죽은 호랑이가 다시 사람으로 환생하여 승려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환생한 호랑이가 바로 일엄사(日嚴寺)의 승려로 비밀스런 주문을 닦아 자신의 법력을 더해 사람들이 믿게 하다가 왕명을 받아 경기의 어느 사찰에 부임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최자는 이것이 일엄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라고 하나 믿기 어렵다고 평하였다. 『보한집』의 전승은 일엄이 입적한 이후에도 그에 대한 전설이 전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한편,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는 일엄의 사건이 명종의 지혜로움을 보여 주는 일화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