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우정(偶丁).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 출신. 3·1운동 때 중앙지도체 48인 중의 1인이었다. 1895년(고종 32) 일본에 가서 게이오의숙[慶應義塾] 중학교 특별과를 거쳐 동 전수학교 경제과를 졸업한 뒤 서울의 여러 사립학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쳤다.
손병희(孫秉熙) 등이 주축이 된 거족적인 독립운동계획에 참여하여, 일본정부와 귀족원 · 중의원에 조선독립에 관한 의견서와 통고문 및 선언서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에 2월 27일 오후 7시 최남선(崔南善)으로부터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통고문 3통과 선언서를 받아 3월 1일 오후 4시경 일본 동경에 도착, 3일에 이 문서를 일본 수상과 의회에 우송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3월 9일 귀국 도중에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본국에 압송되었으나, 미결수로 1년 7개월간 옥고를 치르다가 무죄로 석방되었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