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규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3·1운동의 기획과 실행에 가담한 민족대표 48인 중 한 사람으로, 일본 정부와 귀족원, 중의원에 선언서를 전달한 독립운동가.
이칭
우정(偶丁)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63년(철종 14)
사망 연도
1948년
출생지
전라북도 익산
관련 사건
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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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3·1운동의 기획과 실행에 가담한 민족대표 48인 중 한 사람으로, 일본 정부와 귀족원, 중의원에 선언서를 전달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호는 우정(偶丁).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 출신. 3·1운동 때 중앙지도체 48인 중의 1인이었다. 1895년(고종 32) 일본에 가서 게이오의숙[慶應義塾] 중학교 특별과를 거쳐 동 전수학교 경제과를 졸업한 뒤 서울의 여러 사립학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쳤다.

손병희(孫秉熙) 등이 주축이 된 거족적인 독립운동계획에 참여하여, 일본정부와 귀족원 · 중의원에 조선독립에 관한 의견서와 통고문 및 선언서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에 2월 27일 오후 7시 최남선(崔南善)으로부터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통고문 3통과 선언서를 받아 3월 1일 오후 4시경 일본 동경에 도착, 3일에 이 문서를 일본 수상과 의회에 우송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3월 9일 귀국 도중에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본국에 압송되었으나, 미결수로 1년 7개월간 옥고를 치르다가 무죄로 석방되었다.

상훈과 추모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운동사자료집』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독립운동사』2(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삼·일운동비사』(이병헌, 시사시보사,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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