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백경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성균관대사성, 지중추부사,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문경(文卿)
  • 시호문정(文貞)
  • 하의(荷漪)
인물/전통 인물
  • 본관풍천(豊川, 지금의 황해도 송화)
  • 사망 연도1864년(고종 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성균관대사성|지중추부사|판중추부사
  • 출생 연도1800년(정조 2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영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성균관대사성, 지중추부사,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문경(文卿), 호는 하의(荷漪). 임조용(任祖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희직(任希稷)이고, 아버지는 참판 임존상(任存常)이며, 어머니는 남속(南涑)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27년(순조 27) 진사로서 증광문과에 병과 제8인으로 급제하고, 1832년 홍문관에 뽑혀 들어갔다. 1839년(헌종 5) 충청좌도암행어사로 나가 민정을 시찰하고 서계(書啓)를 올려 충주목사 신재익(申在翼) 이하 12인의 수령을 처벌하게 하였다.

1847년 윤정현(尹定鉉)·홍우순(洪祐順) 등과 함께 재신(宰臣)의 반열에 올랐고, 1856년(철종 7) 8월 성균관대사성이 되었다가, 11월 동지사(冬至使)의 부사로 북경에 다녀왔다.

1858년 1월 형조판서를 거쳐 그 해 12월 수원유수가 되어 이듬해 11월까지 지냈다. 그 뒤에는 호군·대호군·지중추부사·판중추부사 등의 서반 명예직과 비변사당상을 역임하였다.

1864년(고종 1) 뜻하지 않게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그 해에 죽었다. 그는 일생을 학문연구에 정진하였고 관직생활에 청렴하였다. 문장에 명성이 있어『자각만고(紫閣漫稿)』 1책을 남겼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참고문헌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헌종실록(憲宗實錄)』

  • - 『철종실록(哲宗實錄)』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 『일성록(日省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기년변고(紀年便攷)』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