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문경(文卿), 호는 하의(荷漪). 임조용(任祖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희직(任希稷)이고, 아버지는 참판 임존상(任存常)이며, 어머니는 남속(南涑)의 딸이다.
1827년(순조 27) 진사로서 증광문과에 병과 제8인으로 급제하고, 1832년 홍문관에 뽑혀 들어갔다. 1839년(헌종 5) 충청좌도암행어사로 나가 민정을 시찰하고 서계(書啓)를 올려 충주목사 신재익(申在翼) 이하 12인의 수령을 처벌하게 하였다.
1847년 윤정현(尹定鉉)·홍우순(洪祐順) 등과 함께 재신(宰臣)의 반열에 올랐고, 1856년(철종 7) 8월 성균관대사성이 되었다가, 11월 동지사(冬至使)의 부사로 북경에 다녀왔다.
1858년 1월 형조판서를 거쳐 그 해 12월 수원유수가 되어 이듬해 11월까지 지냈다. 그 뒤에는 호군·대호군·지중추부사·판중추부사 등의 서반 명예직과 비변사당상을 역임하였다.
1864년(고종 1) 뜻하지 않게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그 해에 죽었다. 그는 일생을 학문연구에 정진하였고 관직생활에 청렴하였다. 문장에 명성이 있어『자각만고(紫閣漫稿)』 1책을 남겼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