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진천 출신. 1912년 서울에서 간호원으로 근무할 때 일본경찰에 쫓겨 환자로 가장하여 입원하고 있던 신팔균(申八均)과 1914년 결혼하였다.
그 뒤 신팔균과 함께 만주에서 비밀문서의 전달, 군자금의 모금, 독립군후원 등에 힘썼다. 신팔균이 항일운동단체인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의 군사위원장으로 항일전쟁을 수행할 때에도 계속 같이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4년 2월 신팔균이 독립군을 훈련시키고 있을 때 대규모의 일본군 공격을 받아 전사하였는데, 참모들이 신팔균의 전사사실을 감추고 귀국을 재촉하므로 귀국하였다가 뒤에 전사소식을 알고 유복녀(遺腹女)를 죽이고 음독 자결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