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성중(聖仲). 임세양(林世良)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상규(林象奎)이고, 아버지는 임지호(林志浩)이며, 어머니는 한사검(韓師儉)의 딸이다.
1771년(영조 4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77년(정조 1) 사간에 임명되었으며, 1782년 이후 대사간·대사헌을 거쳐, 1797년 강화부유수가 되었는데, 상경하라는 왕명을 받았으나 왕의 인문(印文: 인장)이 없는 서찰만을 보고 방호(防護)의 중책을 잠시도 떠날 수 없다고 거부하였다가 파직되었다.
1799년 진위부사(陳慰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오고, 다시 그 이듬해에 세폐 겸 사은부사(歲幣兼謝恩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803년(순조 3) 대사간·도승지를 거쳐 다음해 공조판서로서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에 대한 존호를 가상하기 위해 설치한 상호도감제도(上號都監提調)로 활동하여 정헌대부(正憲大夫)의 품계로 승진되었다가 곧 도제조가 되었다.
1805년에 대왕대비가 죽자 산릉도감제조로 활약하고 오위의 대호군에 재임 중 죽었다. 1811년 공조판서에 증직되었으며, 시호는 간헌(簡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