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등은 이찬(伊飡)이었다. 629년(진평왕 51) 신라는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공격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진평왕 본기에 따르면 왕이 대장군 용춘(龍春)·서현(舒玄), 부장군 김유신(金庾信)을 보내어 고구려 낭비성을 침략하게 하였다고 한다.
같은 책 김유신열전에는 629년 8월에 왕은 이찬 임영리와 파진찬(波珍飡) 용춘·백룡(白龍), 소판(蘇判) 대인(大因)·서현 등을 보내어 병사를 거느리고 고구려 낭비성을 치게 하였다고 되어 있다. 이 싸움에서 신라는 고구려군 5,000명을 죽이고 1,000명을 사로잡자 성안의 사람들이 모두 나와 항복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신라측에서는 17관계의 제2관등인 이찬을 비롯하여 중요 인물이 장군으로서 참가한 전투인 점으로 미루어보아 고구려의 낭비성에 대한 공격이 상당히 중요한 전투였음을 알 수 있는데, 아마도 임영리가 이 전투에서 가장 대표격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