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연암(淵菴). 평안남도 중화 출신. 천도교인으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다. 24세 때 동학에 입교하였고, 1894년 동학혁명에 참여하였다. 그 뒤 1912년 천도교 도사(道師)가 되어 평양에서 포교에 전력하였다.
독립운동의 기운이 고조되던 1919년 2월 25일경 천도교의 기도회 종료보고와 고종(高宗)의 국장(國葬)을 참배하기 위하여 서울에 올라갔다가, 손병희(孫秉熙)·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 등을 만나 독립운동에 관한 계획을 듣고 이에 적극 호응하여 천도교측의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으로서 서명하기로 약속하였다.
2월 28일 밤에는 서울 재동의 손병희 집에서 다른 민족대표들과 함께 독립운동에 대한 최종계획을 수립하였다. 3월 1일 오후 2시 인사동의 태화관(泰華館)에 손병희 등과 민족대표로 참석하여 독립선언서를 회람하고 만세삼창을 외쳤다.
그 뒤, 출동한 일본경찰에 자진 검거되어 2년형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에도 계속 항일운동을 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