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일제강점기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면서 항일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임유식은 면사무원으로 근무하기도 하였다. 고향에 모친, 아내와 아이들이 살았는데, 생활이 곤란하여 서울을 오가면서 토지를 매매하고 인삼 중개를 하면서 생계를 이었다. 1971년 2월 25일에 사망하였다.
주요 활동
3 · 1운동 후에는 국내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상하이 임시정부의 이동휘(李東輝)의 증명이 찍한 가정부파견원(假政府派遣員)이라 쓴 군자금 모집원 증명서와 권총을 들고 자금을 모집하였다.
국내에 들어와서는 20여 차례에 걸쳐 21만여 원의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이를 임시정부와 대한독립단에 송금하는 등 활발한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2년 1월 9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같은 해 4월 1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논문
- 박성순, 「대한독립단의 위상과 대한광복군사령부의 성립」(『숭실사학』 445, 숭실대학교사학회, 2020)
- 이성우, 「재만 대한광복단의 조직과 활동」(『한국독립운동사연구』 44,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3)
신문
- 『매일신보』(1922. 1. 20.)
인터넷 자료
-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조서(https://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List.do?goTocode=20001)
주석
-
주1
: 백두산 부근에서 시작하여 단둥(丹東)에 까지 이르는 압록강 유역의 만주 지방.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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