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오산교회, 평양 서문밖교회, 대타령교회 등에서 목회한 목사. 부흥사.
내용
1921년 9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에서 열린 만국장로교연합총회에 조선대표로 참석하여 ‘조선교회의 과거·현재·미래’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였다.
귀국하여 총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우리의 일은 우리가 할 것뿐이오니 실력양성이 제일인 줄 압니다. 우리 총회에서 인물양성을 어서 속히 힘쓰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고 하여 한국교회의 자립과 함께 자주의 책임과 권한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그 뒤 평안북도 정주 오산교회(五山敎會) 목사로 시무하다가 1929년 평양 서문밖교회로 옮겼다. 서문밖교회에는 매회 3,000여 명의 군중이 참여하였으며, 그 여파가 전국적으로 퍼져 부흥사로도 활약하였다.
1935년 평양 대타령교회(大駝嶺敎會)로 옮겼다. 1936년 제25회 장로교 총회에서 남북대립이 격화하여 남부총대들이 남 총회분립운동을 일으켜 총회가 분열 직전에 있을 때, 교회의 합동을 호소하여 분열의 위기를 넘길 수 있게 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기독교회사(韓國基督敎會史)』(민경배, 대한기독교출판사, 1982)
- 『한국기독교부흥인물사』(이호문, 초석출판사, 1978)
- 『김인서저작전집(金麟瑞著作全集) 권5』(신망애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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