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백심(伯深). 일찍이 사마시에 합격하고 순릉참봉(順陵參奉)으로 임용되어, 의금부도사를 거쳐 용궁현감이 되었다. 그 뒤 내외직을 역임하였다. 공조좌랑·평시서영(平市署令)에서 사재감첨정에 올랐다가, 외직으로 영주군수를 지냈다.
구장술(九章術)에 능통하였고 이르지 못한 바가 없었다. 현종이 동궁시절에 망해법(望海法: 측량술)을 알려고 하여 송시열(宋時烈)이 그에게 시켰으나 부름에 응하지 못하였다. 참판 김시진(金始振)이 산서를 수집하여 그 중 파손부분을 임준으로 하여금 보완시켰는데, 나중에 다른 원본을 찾아 그 부분을 대조하니 꼭 들어맞았다. 모두 그의 식견에 탄복하였다.
임준에 대한 수학상의 평가는, 최석정(崔錫鼎)의 『구수략(九數略)』의 고금 산학자 명단에 그 이름이 실려 있는 것 이외에, 김시진에 의한 『산학계몽』 중간본 서문에도 있어 그의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 저술로는 『신편산학계몽주해(新編算學啓蒙註解)』(1662)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