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도 방주익(方周翼)·박승혁(朴承赫)·강명환(姜明煥)·심항기(沈恒基) 등은 일제로부터 국권을 회복하는 길은 교육을 통한 실력배양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이를 적극 추진하기 위하여 이 단체를 조직하였다.
단장 방주익, 부단장 김성익(金性翊), 총무 박승혁, 회계 심항기, 서기 최태형이었다. 각지에서 단원을 모집하고 단원으로부터 입단금 1원과 월회비 20전을 징수하여 이것을 단의 기금으로 적립, 실업을 경영하는 한편, 그 이식(利殖)으로 청년들을 교육시키며 기회를 보아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1916년 활동을 전개하기도 전에 일본경찰에 발각되어 단원 19명이 단천헌병대에 붙잡혔다. 함흥지방법원에서 방주익·박승혁·강명환·심항기는 징역 1년 6월, 유창률(劉昌律)은 징역 1년, 김성익·김동섭(金東燮)·최태형은 징역 10월, 나머지 단원은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