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鄭澈)의 가사와 단가를 모은 『송강가사(松江歌辭)』 성주본(星州本)에는 정철의 작품으로 실려 있으나 송순의 작품임이 확실하다.
송순의 문집인 『면앙집(俛仰集)』 권4 잡저편(雜著篇)에 한역가가 실려 있고, 『진본 청구영언』 등에 국문 시가가 전한다. 이 작품의 배경에 대하여는 이수광(李晬光)의 『지봉유설(芝峰類說)』 권14 가사조(歌詞條)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명종이 어느날 대궐 정원의 황국화를 꺾어 옥당관(玉堂官)에게 주며 노래를 지어 올리라고 하였다. 갑자기 명을 받은 옥당관이 어찌할 줄을 모르자, 마침 수직(守直)을 하고 있던 송순이 이 작품을 지었다는 것이다. 임금이 크게 상을 내렸다.
“풍상(風霜)이 섯거친 날에 ᄀᆞᆺ픠온 온 황국화(黃菊花)를, 금분(金盆)에 ᄀᆞ득 다마 옥당(玉堂)에 보내오니, 도리(桃李)야 곳이오냥 마라 님의 ᄠᅳᆺ을 알괘라." 국화의 오상고절(傲霜孤節)을 읊은 것이다.
이 작품은 임금의 명을 받아 읊은 응제시(應制詩)다. 응제시는 한시로 짓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