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천안 출신. 1917년 비밀항일결사인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에 입단, 김한종(金漢鍾)과 함께 충청남북도 담당책임자로 활동하면서 유중협(柳重協)·강석주(姜奭周)·김재창(金在昶) 등 수많은 동지를 포섭하여 입단하게 하였으며, 각지에서 군자금조달에 힘썼다.
대한광복단이 만주에 독립군 사관학교를 설립하고 대규모의 무력항일전투를 펼 때를 대비하여 군자금모금활동을 폈다. 1918년 1월 24일 김경태(金敬泰)·임봉주(林鳳柱)와 함께 친일파인 아산군 도고면의 면장 박용하(朴容夏)를 찾아가 광복단의 사형선고문을 낭독한 뒤 사살하였다.
그러나 광복단원이었던 이종국(李鍾國)이 천안경찰서에 밀고함으로써 광복단의 활동이 발각되어 붙잡혔다. 1919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21년 4월에 옥사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