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칠곡 지방의 국채보상회 회장, 제2차 유림단운동 영남대표 등을 역임하며 일제의 통치에 저항한 학자·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1907년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 전국에 파급될 때 칠곡지방의 국채보상회 회장으로 추대되어 활동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나자 곽종석·김창숙(金昌淑) 등과 협의하여 파리평화회의에 제출할 독립청원서를 작성하였으며, 고향에 만세운동을 일으기기 위해 이기정(李基定)·성대식(成大湜)·송수근(宋壽根) 등 유림과 접촉하여 만세일정을 계획하였다.
이때 유진성(兪鎭成)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측의 만세운동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들과 만나 함께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합의, 4월 2일 성주 장날의 독립만세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25년 제2차유림단운동이 있을 때 영남대표로 활동하였다. 저서로는 『회당집』·『요좌기행문(遼左紀行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심산유고(心山遺稿)』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독립운동사』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 『고등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경상북도경찰부, 1934)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