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울진 출신. 일명 상징(相徵), 원제(元濟). 1922년 재만 각 독립운동단체가 통합하여 결성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가입하여 통의부소속 독립군인 의용대(義勇隊) 소대장으로 직접 항일전투에 참전하였다.
1926년 만주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서 동명학교(東明學校) 교사로 항일애국교육을 실시하여 청년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1929년 국민부(國民府)가 결성되고 그 자매기관인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이 조직되자 이에 참여하고 소속 독립군인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의 제5대장으로 중국군과 연합, 항일전투를 수행하였다.
1932년 1월 흥경현(興京縣) 교외 서세명(徐世明)의 집에서 국민부와 조선혁명당 간부의 연석회의가 개최되어 앞으로의 항일투쟁방법을 협의하던 중 일본경찰과 만주경찰의 기습을 받았다.
대부대의 습격을 받아 용감히 싸웠으나 중과부족으로 김보안(金保安)·이종건(李鍾乾)·이호원(李浩源) 등 7명의 간부와 같이 체포되고 말았다. 1932년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1936년 옥사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