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성몽정의 후손 성주빈(成周斌)·성경운(成景運)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성주빈과 성경운의 발문이 있다.
3권 1책. 석인본. 국립중앙도서관, 연세대학교 도서관, 미국 UC버클리대학교 도서관(UC Berkeley Library) 등에 있다.
권1에 부(賦) 2편, 시 106수, 권2에 소(疏) 1편, 계(啓) 2편, 책(策) 2편, 서(書) 1편, 서(序) 2편, 기(記) 1편, 잠(箴) 1편, 전장(箋狀) 3편, 축문 5편, 묘갈명 1편, 권3에 부록으로 연보·행장·묘갈명·제가기술(諸家記述)·투증시편(投贈詩篇) 등이 수록되어 있다.
부의 「송안남사범극신부(送安南使范克愼賦)」, 시의 「차안남사범극신운(次安南使范克愼韻)」, 서(序)의 「별안남사원율경서(別安南使阮慄卿序)」 등은 저자가 중국 사행(使行)의 일원으로 북경(北京)에 갔을 때 안남의 사신과 만나 지은 시문이다. 한자 문화권과의 교류라는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별안남사원율경서」는 1498년(연산군 4) 사신을 따라 중국에 갔을 때 봉천문(奉天門) 앞 회동관(會同館)에서 안남의 한 선비와 서지(書紙)로 문답하면서 깊은 인간적 정회와 신뢰를 쌓았던 체험을 기록한 글이다.
계의 「의정부청정서정계(議政府請停西征啓)」는 당시 대흉년으로 백성들의 생활이 어려운데 서북 지방의 국경 수비를 위해 징병하는 일은 백성들의 원망을 사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중지할 것을 촉구한 내용이다. 「간심목장계(看審牧長啓)」는 충청도절도사로 있을 때 홍주 지방에 출몰해 목장의 말을 해치고 있던 호랑이의 토벌 작전에 관한 보고 내용으로,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서(書)의 「상대명예부상서서(上大明禮部尙書書)」는 1505년 원접사종사관(遠接使從事官)으로 의주에 있을 때, 사신을 수행한 삼위달자(三衛撻子)들이 연산(連山) 등지에서 우리나라 백성들을 구타하고 노략질을 자행함을 보고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한 글이다.
기의 「신정승파오달기(申政丞坡吾達記)」는 1502년 3월 왕명에 의해 과거 신숙주(申叔舟)가 함경도 지방의 야인을 물리치고 건설한 육진(六鎭) 지역의 파오달을 순찰하고 난 뒤 쓴 것이다. 회령에서 사흘 걸려 부령진(富寧鎭)의 수라(水羅) 연안에 도착한 경과를 기록하였다.